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게 재능의 문제라고 오래 믿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환경과 루틴이 재능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결정하더군요. 『진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비밀, 집공부』는 30여 년간 고등학교 교단을 지킨 손지숙 작가가 이론과 실제 양쪽에서 뽑아낸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제가 아이들한테 저도 모르게 저질렀던 실수들이 떠올랐고, 동시에 "이건 오늘 당장 써볼 수 있겠다" 싶은 것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집공부 시대, 그리고 제가 포스트잇에 꽂힌 이유
이 책은 지금이 '집공부 시대'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학원이나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 학습의 핵심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그게 다소 이상적으로 들렸는데,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책에서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장기기억(Long-term Memory) 전략이었습니다. 여기서 장기기억이란, 단순히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로 쌓는 단기 기억과 달리, 정보가 뇌에 안정적으로 저장되어 오래도록 인출 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책에서는 거실에 화이트보드를 두고 부모나 형제에게 선생님처럼 설명하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이른바 '가르치며 배우기' 효과인데, 이 방법은 교육심리학에서도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학습 피라미드란 수동적 듣기보다 능동적 설명하기가 기억 보유율을 훨씬 높인다는 이론으로, 출처: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련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저는 화이트보드 대신 포스트잇을 씁니다. 화장실 거울, 컴퓨터 모니터 옆, 책상 벽면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눈이 가는 자리에 기억할 내용을 붙여두는 겁니다. 반복 노출(Spaced Repetition) 원리인데, 여기서 반복 노출이란 일정 간격을 두고 같은 정보를 계속 마주치게 함으로써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다시 강화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이 방법을 꽤 오래 써왔고, 아이들한테도 권해봤습니다.
처음엔 아이들 반응이 영 시큰둥했습니다. "귀찮아", "별 효과 없어 보여" 이런 말을 들었는데, 막상 영어 단어 시험이나 받아쓰기 점수가 오르니까 아이들 스스로 신기해하면서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설득보다 결과를 먼저 보여주는 게 훨씬 빠릅니다.
- 화이트보드로 가족에게 설명하며 장기기억 강화
- 포스트잇을 생활 반경에 붙여 반복 노출 효과 활용
- 설득보다 작은 성공 경험으로 습관 형성 유도
성공 경험 설계, 부모가 자주 실수하는 지점
이 책에서 제가 가장 뜨끔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시험에서 5등 안에 들면 최신 폰 바꿔줄게" 같은 조건부 보상 이야기입니다. 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책에서는 이런 목표 설정이 아이에게 오히려 해롭다고 짚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결과 목표(Outcome Goal)는 아이 혼자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 목표란 등수나 점수처럼 타인과의 비교에 의해 달라지는 목표를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변 친구들이 더 잘하면 달성이 불가능해집니다.
반면 책에서 권하는 건 과정 목표(Process Goal)입니다. "매일 1시간씩 더 공부해보자"처럼 자신의 행동 자체를 기준으로 삼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 목표를 달성하면 아이는 작은 성공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으로 이어집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으로, 미국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이며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학업 성취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여기서 조금 다릅니다. 책에서는 결과 목표를 지양하라고 하는데, 저는 아이 성향에 따라 큰 목표를 함께 주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를 설정해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미션 클리어 감각이 강한 아이한테는 큰 그림이 보여야 오히려 동기가 살아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과정 목표를 매일 쌓으면서 동시에 큰 결과 목표도 시야에 두면, 적어도 저희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더 오래 달렸습니다.
다만 이건 아이의 기질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라, 무조건 큰 목표를 들이미는 건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경쟁이나 압박에 예민한 아이라면 책의 방식 그대로 과정 목표만 쌓는 쪽이 안전합니다.
선행학습, 얼마나 앞서야 약이 될까
선행학습(Advance Learning)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겨 있습니다. 선행학습이란 현재 학년이나 학기보다 앞선 내용을 미리 학습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에서는 일반적인 아이라면 방학을 이용해 다음 학기 내용을 훑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제안합니다. 과한 선행은 오히려 학습 흥미를 떨어뜨리고, 학교 수업을 '이미 아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 집중력을 해친다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맞는 말입니다. 너무 앞서 나간 아이가 막상 학교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경우를 옆에서 직접 봤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행의 적정선을 방학 한 학기보다는 조금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 6개월, 가능하면 1년 정도는 앞서야 한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학기가 시작될 때 아이가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들어가면, 첫 단원부터 이해가 되고, 그게 자신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학기 초의 자신감은 이후 6개월을 버티는 힘이 됩니다. 이걸 제가 직접 겪어보니, 차이가 꽤 컸습니다.
물론 '과한 선행'의 기준은 아이마다 다릅니다. 학습 속도가 빠른 아이에겐 1년 선행도 무리가 없을 수 있고, 현행 학습도 벅찬 아이에겐 방학 선행 한 챕터도 과할 수 있습니다. 책의 기준을 출발점으로 삼되, 아이 반응을 보면서 조정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각 가정에서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최종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집공부 루틴,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A. 제 경험상 초등 저학년부터 작은 습관 하나씩 붙여 나가는 게 가장 수월했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하면 아이도 부모도 금방 지칩니다. 포스트잇 한 장 붙이는 것처럼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성공 경험을 먼저 쌓는 방식이 오래 갑니다.
Q. 아이한테 결과 목표를 주면 정말 역효과가 나나요?
A. 성향에 따라 다르다는 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경쟁 자극에 반응하는 아이라면 큰 목표가 오히려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압박에 예민한 아이에게 결과 목표는 확실히 독이 됩니다. 아이를 먼저 관찰하는 게 어떤 공부법 책보다 우선입니다.
Q. 선행학습, 학원 안 보내고 집에서 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시중에 나온 예습용 문제집 한 권을 방학 동안 아이와 함께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학기 초 자신감이 달라집니다. 학원보다 부모가 옆에서 함께하는 분위기가 아이에게 더 큰 안정감을 줄 때가 많습니다.
Q. 포스트잇 기억법, 어른한테도 효과 있나요?
A. 저 자신도 오래 쓰고 있어서 답할 수 있습니다. 어른한테도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반복 노출 원리는 나이와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모니터 옆에 영어 단어 하나만 붙여둬도 일주일이면 자연스럽게 외워집니다.
결론
『진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비밀, 집공부』는 교사와 엄마라는 두 역할을 30년 넘게 동시에 수행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입니다. 이론만 아는 사람도, 경험만 있는 사람도 이 두께의 신뢰를 담기 어렵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어떤 방법이든 아이를 먼저 관찰하라는 메시지가 책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포스트잇 하나를 더 붙였습니다. '오늘 아이한테 과정을 물어봤는가?' 라고 쓴 메모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묻는 부모의 질문 하나가 자기효능감과 장기기억, 그리고 선행학습의 질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됐습니다. 집공부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